2014년 2월 28일 금요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 : 만남

사랑의 집
십수년 전에 성도들과 함께 중국 연길에 있는 애심원(愛心院)이라 불리우는 사랑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사랑의 집은 원장 내외분이 조선족 어린 고아들과 함께 사는 고아원이었습니다. 당시 건물은 숙소와 고아원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숙소는 기금이 생길때마다 지어서 몇 층으로 올렸는데 많은 방을 서로 연결하느라 마치 미로와 같이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 곳에 묶는 동안 목사님께서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그 간증 가운데 저에게 충격을 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 날은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저는 똥목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아니왜 목사님께서 자신을 똥목사라고 소개하실까?’참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저는 날마다 수십명의 고아들의 기저귀를 갈아 주는 똥목사입니다”.


순간 저의 마음에는 한없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감사함이 교차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날까지도 금목사가 되려했습니다. 신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금목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고상하고 능력있는 큰 교회 목사가 되어 한국교회를 섬겨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목사로서 명성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목사님의 똥목사 소리에 큰 깨달음이 왔습니다. 저야말로 더럽고 냄새나는 진짜 똥목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회마저도 일신의 야망으로 삼고자 하는 저의 추하고 악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냄새나고 더러운 똥목사였습니다. 저는 그 날부터 주님께 부족한 종도 똥목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흉내라도 내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똥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지 못해도 그렇게 가야만 한다고 채찍질하고 싶습니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가장 작은 소자들의 똥기저귀를 갈아주는 그 분이야말로 진짜 금목사였습니다. 그 분은 남의 십자가를 나의 십자가로 온전히 지고가는 진짜 예수의 제자였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감사한 만남이었습니다.    

-금목사 똥목사, 두 십자가 중에서-
   

2014년 2월 25일 화요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 : 웃음

웃음은 마음의 청명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코메디 중에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프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구봉서, 배삼용등 한국 코메디의 대부들이 큰 웃음을 주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많이 웃게 하였던 희극입니다. 웃음은 사람의 마음과 육신에 새로운 에너지를 일으키곤 합니다. 웃음은 그 자체가 위로입니다. 한 번은 서울에 있는 고아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옛 저택을 수리하여 고아원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수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각 방에 들어 섰을 때 보았던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방 안 구석 구석에 서 있던 장면입니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끼르륵, 끼르륵하면서 놀고, 뛰고, 웃고, 인사도 할터인데 그 방안에는 정적만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생기없이 그저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너무나 충격이 되어서 안내하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그 분의 말은 아이들이 이미 우리가 잠깐 왔다 갈 사람들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에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무 정을 많이 주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이 제 인생의 앨범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 일 것입니다.

웃음이 사라진 인생처럼 불행한 삶은 없습니다. 성경 인물 가운데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 보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99세가 될 때까지 자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75세 때에 자녀를 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무려 24년동안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모든 소망이 끊어졌는데 어찌 웃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98세 정도 되었을때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내년 이맘 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장막 뒤에서 들은 사라는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88세된 여자가 어찌 아기를 갖을 수 있을까 하면서 웃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라가 웃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웃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시 하나님은 아니다 네가 웃었다고 하시면서 네가 반드시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웃음이라고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바로 이삭(Issac)입니다. 이삭의 뜻이 바로 웃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을 수 없는 삶에 진정한 웃음을 주신 분입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자는 진정한 웃음을 선물로 받는 자입니다.(*)


2014년 2월 22일 토요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 : 치유

얼마 전에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스보로의 작은 개척교회에서 성경금맥집회를 하였습니다. 집회 후에 샬롯에 있는 숙소까지 전도사님께서 라이드를 해 주셨습니다. 처음 뵙는 전도사님이었지만 최근에 자신에게 일어난 삶을 나누었는데 참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지거 쾨더 
전도사님은 한국의 유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일하다가 소명을 받았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올 해 삼십 삼세 된 분이었습니다. 그는 작년 말에 한국에 나가 동갑의 자매와 선을 보았는데 여섯번 만나고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답니다. 꽃피는 봄이 되면 결혼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제하는 자매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이 자매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열 살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답니다. 졸지에 동생들을 키워야 하는 소녀 가장이 된 것입니다. 자매는 동생들을 키우며 여상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였고, 졸업 후에 다행히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었습니다. 백 오십여명이 넘는 직원들 가운데서도 실적 1위에 오를 정도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생들 학교 뒷바라지를 다 했습니다. 서울의 유수한 명문 사립대에서 교직원 선출을 할 때 접수를 하였습니다. 자격조건에 부족했지만 지원을 했습니다. 담당 교수께서 자매의 삶의 성실함을 보고 한 번 인터뷰의 기회를 주자고 제안하여 모든 교수들이  면접을 했는데 그녀를 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도사님은 참으로 열심히 살아 온 자매의 삶에 감동하면서 자신의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되었고 두 사람은 서로의 반려자가 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자매의 마음에는 늘 눌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부모님이 되실 분들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부모없이 자란 사람’이란 자격지심이 있었습니다. ‘내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어떻게 반응하실까? 이것이 늘 걱정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의 가정은 부산이었고, 자매는 서울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자매에게 걸려 왔습니다. 시어머니가 되실 분이었습니다.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한 마디에 자매는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그 한마디는 “수연아! 엄마다! 라는 외마디였습니다. 그토록 들어보고 싶었으나 들을 수 없었던 말이었습니다. 깊은 사랑과 배려와 위로의 이 한마디가 자매의 수십 년 간의 두려움과 외로움, 아픔과 상처를 모두 씻어 주었습니다. 얼마 후 부산에서 올라 온 시어머니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하얀 봉투 하나를 건넸습니다. 그 봉투에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엄마가 수연이에게 주는 첫번째 용돈.” 자매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습니다. 어느 덧 캄캄해진 노스캐롤라이나 파크웨이를 달리며 이 아름답고 사랑스런 이야기는 제 마음마저 녹여 내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룻과 나오미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의 한 마디가 상처난 다음 세대를 치유하고도 남습니다. “수연아! 엄마다!(*) 



2014년 2월 21일 금요일

LWC 제자훈련 2단계 : 자녀의 길 (하나님의 자녀로서 SONSHIP 회복과 누림)


LWC DT 2
인간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추상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를 다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됨(SONSHIP)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 됨이 회복된 자들은 삶의 의미와 비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영생의 문제까지도 다 해결 받음으로 진정한 평안과 기쁨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쉽은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구원자 하나님의 자녀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던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죄의 종으로 전락했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를 떠나 홀로 사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곧 결핍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죄가 들어온 세상은 사망이 왕 노릇하여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얻고 살수가 없습니다. 좌절과 절망뿐입니다. 미움과 정죄에 삶을 삽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됨이 회복되면 전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2:20)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나와 함께 사시는 하나님과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지난 20 여년 동안 SONSHIP 복음 제시를 할 때마다 얻은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큽니다. 많은 영혼들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심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펴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고, 어떻게 그 자녀 됨을 상실했고, 그 상실의 결과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 자녀됨을 회복하여 살 수 있는지 전할 때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을 듣는 자마다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성령의 역사가 넘쳤습니다.

LWC DT 2
LWC DT 2
「자녀의 권세를 누리라」(도서출판 그리심) 를 출판한지 10년 만에 그동안 교회에서 은혜를 나누고 양육했던 교재「SONSHIP,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다」(쿰란출판사) 훈련생용과 지도자용을 출판하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부족한 교재를 통해 아직 주님을 모르는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회복하고 ,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이 건강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권기창목사는 본서에서 복음의 핵심을 명확히 파악하여 서술해가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모든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을 '관계의 끈' '교제의 끈'으로 풀어나가는 시도는 탁월한 해법으로 여겨집니다- 김의환 추천의 글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성도들의 삶에 길잡이가 되고, 한국교회의 복음 제시에 새로운 지침이 될 수 있는 '자녀의 권세를 누리라'는 책을 펴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의미와 긍지 그리고 보람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 
박조준 추천의 글 중에서

LWC 제자훈련 3단계 : 제자의 길 (1부/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금맥으로 관통)

LWC DT 3
누가 “좋은 크리스천인가를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행위의 목록들-성경기도전도교회 봉사 - 말하려 합니다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답도 아닙니다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들이 시험에 들면서 교회를 영영 떠나곤 합니다 이런 일이 생겨납니까?

성경적 신앙은 종교적 행위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무엇을 행하느냐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참된 신앙은 종교적 행위목록(Doing)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Being)에서 시작됩니다크리스천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Lord) 섬기는 자들로 ‘여호와 렌즈 성경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그분의 뜻을 땅에 수행하는 자들입니다그들은 그분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바에 온통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교인들이 교회생활에는 익숙하고 교회사역에는 능숙하지만 정작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대하여는 알지 못합니다그러다보니 어려움에 봉착할 그들은 여호와의 (‘여호와 렌즈’)보다는 인본주의적 관점(‘인간 렌즈’)에서 판단하면서 시험에 들게 됩니다 렌즈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습니다어느 누구도 ‘성경 렌즈로의 변화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없어 예수님을 기쁘게 없습니다참된 크리스천은 어느 사역보다 먼저 성경을 통해서 그분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은 무려 천오백여년이란 장구한 시간에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십 명에 이르는 저자들이 기록하고 있어 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무척 어렵게 보입니다그렇지만 신구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에 산맥이 관통하면서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성령 하나님 자신이 저자이심을 보여줍니다(딤후 3:16).

저자 권기창 목사는 ‘하나님의 왕국이란 개념이 성경을 관통하는 산맥임을 찾아내었습니다하나님은 인류 가운데 선택한 아브라함에게 ‘자식과 주어 그의 후손을 통해 그분의 왕국을 건설하시겠다는 언약을 주셨습니다그로부터 시작된 언약의 내용이 어떻게 다음 세대에 계속해서 진행되고 발전되는지와 언제 어떻게 성취되어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그는 성경을 관통하는 산맥을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왕국’ 메시지로 보고 이를 “2(자식) + 1(말씀) + 1(성령)”이란 공식으로 성경의 맥을 잡아주었습니다그는 이를 “2+1+1 관통하는 성경의 금맥 이름을 붙였습니다 공식으로 성경을 하나의 통일된 관점으로 풀어씀으로 성경의 맥을 쉽게 이해하게 주었습니다.

저자가 목회와 선교 현장에서 직접 크리스천들을 가르치면서 책을 기록한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그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성경이 말하는 바를 쉽게 가르치려는 소박한 꿈에서 꿈이 잉태되었다고 말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2+1+1 관통하는 성경의 금맥" 한눈에 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도록 쓰여 있는 책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알기를 원하면서 참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영혼을 귀히 여기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많은 목회와 선교현장에서 읽혀질 있는 이런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지기를 원합니다바라기는 이 책이 평신도 뿐만 아니라 신학도와 목회자들까지 읽혀져서 한국교회가 성경진리의 반석 위에 영원토록 굳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김의원 / 전 총신대학교 총장, 구약학 교수, 현 백석대학원 부총장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LWC 제자훈련 3단계 : 제자의 길 (2부/ '두' 십자가의 제자도로 무장)

LWC DT 3
이 시대의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명제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메신저가 메시지다’라는 말입니다. 사실 한국교회에 메시지는 넘쳐 납니다. 복음의 선포도 남다릅니다. 인터넷을 몇 번만 클릭해도 수 많은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홍수 때에 마실 물이 없다는 것처럼 한국 교회가 그런 형편에 놓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메시지가 선포되는대도 한국 교회는 세상으로 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까? 수많은 메시지가 선포되지만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이니 당연히 메시지를 받을 수 없지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에게는 더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태도 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겸비함으로 우리가 메신저답지 않게 살아온 것을 너나 할 것 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재를 무릎쓰고 주님 앞에 엎드려 울며 고쳐달라고 강청해야 합니다.

예수의 메시지가 능력이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마음, 예수의 삶, 예수의 죽음 그 자체가 이미 메시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메신저가 메시지가 된 원형이십니다. 만약 예수께 서 성육신 하지 않으셨다면, 평범하고 가난하게 살지 않으셨다면, 고난 당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메시지는 아무 능력이 없을 것입니다. 복음은 복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그렇게 사셨기에 자신이 곧 메시지요, 자신이 곧 복음이 되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예수의 몸입니다. 머리가 그러한 원리대로 사셨다면 몸도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메신저가 되며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의 몸이라고 하면서 머리되 신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머리 둘 곳도 없었는데 교회는 이 땅의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을 복이라 합니다. 주의 종들이 호화로운 차와 집을 갖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예수는 세상것을 초월해서 사셨는데 교회는 세상것을 얻는 것을  복으로 여깁니다. 최고, 최상, 최대가 교회의 철학이 되고 비전이 되었습니다. 머리를 따라야 할 몸이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는 것은 조롱이요, 전도의 문을 큰 몸으로 막아 서고 만 것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에 절실한 것은 버림, 단순, 나눔입니다. 교회는 예수처럼 자기 권리를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버릴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복잡한 사역을 내려놓고 단순해 져야 합니다. 내부적으로 너무 복잡하다 보니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사역마저 그 안에서 함몰되고 있습니다. 얽매인 것들을 벗어 버리고 단순해져야 합니다. 또한 이제는 나누어야 합니다. 있어야 나눈다는 것은 거짓말 입니다. 없는 가운데 나누는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나눔은 마음으로 시작해서 손과 발로 끝나야 합니다. 마음이 없으면 절대 나눌 수 없습니다.

메신저가 메시지가 될 때까지 교회는 뼈 아픈 회개와 실천으로 이 명제를 이루어 내어야만 합니다. 머리되신 예수처럼 몸된 교회도 반드시 온전한 메신저로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두' 십자가 중에서-   



LWC 제자훈련 3단계 : 제자의 길 (성경금맥 + 제자도)

LWC DT 3
“목숨 걸겠습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온 고백이 더 이상 거절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세미나에 오셨던 한 목사님께서 이번 제자훈련 과정에 들어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사는 곳은 뉴욕 조지 워싱톤 브리지 건너입니다. 뉴욕에서 개척하여 성도들을 섬기고 계신 젊은 목회자 입니다. 그 곳에서 메릴랜드까지 그레이 하운드를 타고 매주 제자훈련 시간에 맞춰 오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설마’ 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숨까지 걸겠다고 하니 이 목사님의 의지를 넘어 성령의 뜻이 있으심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제자훈련 사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꼬박 4개월 동안 화요일 오후에 뉴저지 집에서 출발하여 수요 제자반에 참여하고 수요일 밤 늦게야 귀가 했습니다. 함께 훈련받았던 모든 이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 세우는 데 목숨 건 것이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자훈련은 어느 한 교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제자훈련은 주님께서 모든 이 땅의 교회에 부여하 신 지상명령이자 사명입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잘못하면 교회의 제자, 목사의 제자를 만들어 내기 쉽습니다. 만약 제자훈련이 그 정도 수준에 머물고 만다면 교회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직 아담의 제자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가는 것만이 교회의 사명이요 목사의 사명입니다. 아담의 제자는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적입니다. 그것은 오직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토록 내 안에 있는 아담성을 죽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생명과 삶 그리고 생활의 모든 영역에 절대 중심으로 중심으로, 절대 주권으로 다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로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기긍정을 하고 영광을 주님께 돌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정한 자기부정 자기긍정의 예수님의 마음으로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가 교인을 숫자로 세는 시대를 끝내야 합니다. 오직 예수의 진정한 제자를 세우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제 새롭게 준비하고 출발하는 LWC 제자훈련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로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세워 나가는데 진력하고자 합니다그 위대한 명령에 생명과 열정과 헌신이 어우러져 주님 앞에 드려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