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7일 목요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 : 복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복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복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늘 음식을 먹는데 사용하는 수저에도 한자로 복을 새겨 놓습니다. 아마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복이 되라는 것일 것입니다. 베개 닢에도 복자를 새겨 놓습니다. 침상에 누워 있을 때도 복이 들어오길 원하는 것입니다. 대문에도 복자를 크게 붙여 놓습니다. 집안으로 복이 들어오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봄이 되면 입춘대길(立春大吉)이란 글귀를 대문에 붙입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복을 흔히 오복(五福)이라 합니다. 오복(五福)이란 말은 중국 고대 상서(尙書) 홍범편(洪範篇)에 맨 처음 기록 되어 있는 구절인데 옛 사람들이 인간의 행복에 대하여 정의해 놓은 고전적인 명언(名言)에 해당합니다. 오복(五福)은 수(), (),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는 장수의 복입니다. ()는 물질과 재산의 복입니다. 강녕(康寧)은 몸과 마음의 건강의 복을 말합니다. 유호덕(攸好德)은 덕을 행하며 즐겨 행하는 복을 말합니다. 고종명(考終命)은 제 명대로 살다가 죽는 복입니다.

놀랍게도 성경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복이 세상이 말하는 복과 좀 다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복이라는 단어는 베라카라는 말인데 축복의 근원’, ‘선물이란 의미입니다. 세상의 복은 사람에게 오는 것이요, 받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복은 사람 자신을 복 자체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는 복이 될지라"(12:2)고 하십니다. 특히 베라카라는 단어의 어원은 바라크 라는 말인데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자가 바로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이 된 사람은 모든 삶이 복을 나누어 주는 근원이 되고,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귀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은 오래 살아야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사명대로 살아야 복이라 하십니다. 세상은 재물이 많아야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정직하게 벌고 베풀고 나누는 삶이 복이라 하십니다. 세상은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생명자체가 복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제 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영생을 누리며 천국에 사는 것이 복이라 하십니다. 날마다 만 왕의 주되신 주님 앞에 무릎꿇음으로 진정한 복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2014년 3월 10일 월요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 : 의탁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새의 종류는 무려 9,700여종이 된다고 합니다. 1990년까지만 해도 400여종 밖에 알지 못했는데 조류학자들의 관찰로 지금까지 밝혀진 새가 만 여 마리가 된다고 합니다. 온갖 종류의 다양한 새들이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알바트로스
뉴질랜드의 남섬 오타고 반도의 외진 곳에는 세상에게 가장 큰 새가 살고 있습니다그 새가 바로 알바트로스입니다. 알바트로스는 날개를 펴면 그 길이가 3,4m에 이릅니다. 알바트로스는 이륙과 착륙을 할 때 기우뚱 거리며 엉성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마도 날개가 너무 길어서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폭풍이 불면 알바트로스는 바람에 그 큰 날개를 맡기고 하늘 높이 올라 먹이를 찾아 무려 3,000 km나 날아갑니다. 모두 다 폭풍을 두려워 하지만 알바트로스 만은 오히려 폭풍을 기다립니다. 폭풍이 자신을 하늘 높이 오르게 하고, 가장 멀리 날게 하기 때문입니다. 알바트로스는 그 거센 바람을 타고 자유로운 비행을 하는 것입니다. 알바트로스는 10살이 되었을 때 짝짓기를 하고, 부부가 함께 70평생을 사랑하며 살다 80세에 죽는다고 합니다. 한 마리가 죽지 않는 이상 짝을 바꾸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보다 나은 새 입니다.  

알바트로스의 비행
예수님께서 이 새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들을 먹이시고 기르신다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요, 예술가요, 최고의 조련사이십니다. 예수님은 창공을 그들의 비행과 자유의 공간으로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아름다운 새들도 돌보시는데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너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생명을 주신 너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알바트로스가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폭풍에 자신의 몸을 맡겼을 때 하늘 높이 올라 세상 끝까지 날아 갈 수 있듯이 예수님은 성령의 바람으로 우리 인생을 가장 높은 곳인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이르러 자유와 평화의 두 날개로 영원토록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2014년 3월 3일 월요일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 : 방패

메릴랜드 숲
메릴랜드에 매우 아름다운 길이 있습니다.자동차로 지나가는 로컬 길인데 풍광이 아름답고 작은 시냇물이 굽이 굽이 길을 따라 흐르는 곳입니다. 머리를 식히고 싶을때에 꼭 찾는 길입니다. 특히 온갖 무늬와 형형색색을 입은 가을 날에는 더욱 예쁜 동화속 길로 변하곤 합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밝은 햇빛이 숲 길 사이로 내려오는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 커브 길을 돌자마자 우리 눈 앞에 놀라운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너구리 가족이 도로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모두 네 마리였습니다. 나란히 길을 건너는 너구리 가족이 갑자기 나타난 차를 보고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럼에도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게 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차를 세우며 세상에서 처음으로 너구리 가족의 여행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어미부터 차례로 건넌 후에 막내처럼 보이는 체구가 작은 너구리가 재촉하며 건넜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막내 너구리가 길을 건너자 마자 우리를 살짝 훔쳐보더니 자기 앞에 있는 나무 위로 살짝 점프에서 나무를 껴 안고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막내 너구리가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 한참동안 웃으며 바라 보았습니다. 제 딴에는 갑자기 나타난 괴상하고, 거대한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 하려는 본능이 발동한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의 귀여움으로 적의 마음을 녹이는 놀라운 실력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찌 동물만 그렇게 자기 보호를 하려 하겠습니까? 사람의 본능 가운데 하나가 자기보호입니다. 자기보호(自己保護)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때때로 닥치는 사건들은 마치 거대한 자동차 앞에 막내 너구리처럼 본능적 자기보호로는 아무것도 보호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너의 방패요 상급이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크신 분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주시는 삶처럼 안전한 삶이 어디있겠습니까? 그 사람은 왠지 모르게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두렵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하나님께서는 방패만 되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급도 되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우리의 선물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 행복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