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말의 힘줄을 끊어라!"

말의 힘줄은 파워를 의미한다
최근 새벽기도 말씀 가운데 큰 은혜를 받았다. 늘 은혜를 주시는 말씀들이지만 특히 심령 깊이 확신으로 다가온 말씀이다.

역대상 18장 6절의 말씀인데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동일한 말씀이 13절에 또 한번 나온다. 한 장의 본문에 이처럼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다윗의 승리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리시는 것이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보면 6절은 북쪽으로 나갈때고, 13절은 남쪽으로 나갈때다. 곧 사방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승리를 안겨주신 것이다. 물론 이 승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다윗의 언약으로 이어가시며 그 약속대로 역사하심이다. 하나님의 비전을 이처럼 사람이 꺽을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는 대적이 없다. 그러면 왜 다윗인가? 물론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셨기 때문이지만 다윗편에서는 무엇을 하였는가?

이전에는 이 말씀의 앞 구절이 눈에 안들어 왔었다. 그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는 승리의 구절만 들어왔다. 목사의 눈으로도 내가 보고 싶은 구절만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새벽묵상에서는 달랐다. 앞의 3,4절이 크게 다가왔다. 소바 왕 하닷에셀과 다윗의 하맛에서의 싸움 사건이다. 이 전쟁에서 다윗은 소바 왕에게서 병거 천대를 빼앗는 승리를 거둔다. 그런데 다윗이 승리 후에 이상한 일을 행한다. 곧 병거를 끄는 말 가운데 백필만 남겨두고 구백필의 발의 힘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상식적이지가 않다. 천필의 병거면 얼마나 나라에 힘이 되겠는가? 얼마든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90%를 버린다. 다 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다윗이 왜 이렇게 행했을까?

묵상은 폭포수처럼 은혜를 부어준다. 다윗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왕을 달라고 하면 왕은 세가지는 하지 말고 한가지는 반드시 행하라고 하셨다. 그 중 하나가 병거를 많이 갖지 않는 것이다. 왜 병거를 많이 갖지 말라고 하셨는가? 하나님 자신이 자기 백성의 병거요, 힘이시요, 능력이 되시기 때문이다. 만약 왕이 병거를 많이 소유하고 더 가지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보다 군사력을 힘으로 삼는 증거가 된다. 세상은 그렇다. 힘을 추구한다. 권력을 의지한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다르다. 오직 하나님만이 힘이시다. 다윗은 바로 이 말씀을 간파하고 90%의 말의 힘줄을 끊어 버린다. 그의 고백이 무엇인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 이처럼 힘이 되신 하나님과 말의 힘이 어찌 비교 될 수나 있겠는가? 그러니 다윗의 믿음의 결단을 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오늘날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누구인가? 믿음의 사람이다.믿음은 무엇인가? 말의 힘줄을 끊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으로 삼았던 것,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것,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잡고 왕노릇하려는 것, 많은 경우 그것은 우리 자아요, 사람이요, 물질이요, 야망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힘줄처럼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들을 끊어내지 않고는 결코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 할 수가 없다. 믿음이 무엇인가? 내가 의지하던 것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작지만 실제적인 끊음의 결단은 어디로 가든지 승리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리게 한다. 지금 이 순간 성령께서 끊어야 할 것을 깨닫게 하시는가? 당신이 하나님보다 더욱 붙들고 있는 것이 있는가? 지금 끊어라! 그러면 비로소 경험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