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1일 금요일

LWC 제자훈련 3단계 : 제자의 길 (1부/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금맥으로 관통)

LWC DT 3
누가 “좋은 크리스천”인가를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행위의 목록들-성경, 기도, 전도, 교회 봉사 등-을 말하려 합니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답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들이 시험에 들면서 교회를 영영 떠나곤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납니까?

성경적 신앙은 종교적 행위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무엇을 행하느냐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은 종교적 행위목록(Doing)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Being)에서 시작됩니다. 크리스천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주’(Lord)로 섬기는 자들로 ‘여호와 렌즈’인 성경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그분의 뜻을 이 땅에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분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바에 온통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교인들이 교회생활에는 익숙하고 교회사역에는 능숙하지만 정작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려움에 봉착할 때 그들은 여호와의 뜻(‘여호와 렌즈’)보다는 인본주의적 관점(‘인간 렌즈’)에서 판단하면서 시험에 들게 됩니다. 두 렌즈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성경 렌즈’로의 변화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 예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참된 크리스천은 어느 사역보다 먼저 성경을 통해서 그분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은 무려 천오백여년이란 장구한 시간에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십 명에 이르는 저자들이 기록하고 있어 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무척 어렵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신구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큰 산맥이 관통하면서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성령 하나님 자신이 원 저자이심을 보여줍니다(딤후 3:16).

저자 권기창 목사는 ‘하나님의 왕국’이란 개념이 성경을 관통하는 큰 산맥임을 찾아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가운데 선택한 아브라함에게 ‘자식과 땅’을 주어 그의 후손을 통해 그분의 왕국을 건설하시겠다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언약의 내용이 어떻게 다음 세대에 계속해서 진행되고 발전되는지와 언제 어떻게 성취되어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그는 성경을 관통하는 큰 산맥을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왕국’ 메시지로 보고 이를 “2(자식, 땅) + 1(말씀) + 1(성령)”이란 공식으로 성경의 맥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는 이를 “2+1+1로 관통하는 성경의 금맥”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공식으로 성경을 하나의 통일된 관점으로 풀어씀으로 성경의 맥을 쉽게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저자가 목회와 선교 현장에서 직접 크리스천들을 가르치면서 이 책을 기록한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그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성경이 말하는 바를 쉽게 가르치려는 소박한 꿈에서 이 꿈이 잉태되었다고 말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2+1+1로 관통하는 성경의 금맥"을 한눈에 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도록 쓰여 있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면서 참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많은 목회와 선교현장에서 읽혀질 수 있는 이런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되어지기를 원합니다. 바라기는 이 책이 평신도 뿐만 아니라 신학도와 목회자들까지 읽혀져서 한국교회가 성경진리의 반석 위에 영원토록 굳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김의원 / 전 총신대학교 총장, 구약학 교수, 현 백석대학원 부총장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LWC 제자훈련 3단계 : 제자의 길 (2부/ '두' 십자가의 제자도로 무장)

LWC DT 3
이 시대의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명제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메신저가 메시지다’라는 말입니다. 사실 한국교회에 메시지는 넘쳐 납니다. 복음의 선포도 남다릅니다. 인터넷을 몇 번만 클릭해도 수 많은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홍수 때에 마실 물이 없다는 것처럼 한국 교회가 그런 형편에 놓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메시지가 선포되는대도 한국 교회는 세상으로 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까? 수많은 메시지가 선포되지만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이니 당연히 메시지를 받을 수 없지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에게는 더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태도 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겸비함으로 우리가 메신저답지 않게 살아온 것을 너나 할 것 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재를 무릎쓰고 주님 앞에 엎드려 울며 고쳐달라고 강청해야 합니다.

예수의 메시지가 능력이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마음, 예수의 삶, 예수의 죽음 그 자체가 이미 메시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메신저가 메시지가 된 원형이십니다. 만약 예수께 서 성육신 하지 않으셨다면, 평범하고 가난하게 살지 않으셨다면, 고난 당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메시지는 아무 능력이 없을 것입니다. 복음은 복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그렇게 사셨기에 자신이 곧 메시지요, 자신이 곧 복음이 되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예수의 몸입니다. 머리가 그러한 원리대로 사셨다면 몸도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메신저가 되며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의 몸이라고 하면서 머리되 신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머리 둘 곳도 없었는데 교회는 이 땅의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을 복이라 합니다. 주의 종들이 호화로운 차와 집을 갖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예수는 세상것을 초월해서 사셨는데 교회는 세상것을 얻는 것을  복으로 여깁니다. 최고, 최상, 최대가 교회의 철학이 되고 비전이 되었습니다. 머리를 따라야 할 몸이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는 것은 조롱이요, 전도의 문을 큰 몸으로 막아 서고 만 것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에 절실한 것은 버림, 단순, 나눔입니다. 교회는 예수처럼 자기 권리를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버릴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복잡한 사역을 내려놓고 단순해 져야 합니다. 내부적으로 너무 복잡하다 보니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사역마저 그 안에서 함몰되고 있습니다. 얽매인 것들을 벗어 버리고 단순해져야 합니다. 또한 이제는 나누어야 합니다. 있어야 나눈다는 것은 거짓말 입니다. 없는 가운데 나누는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나눔은 마음으로 시작해서 손과 발로 끝나야 합니다. 마음이 없으면 절대 나눌 수 없습니다.

메신저가 메시지가 될 때까지 교회는 뼈 아픈 회개와 실천으로 이 명제를 이루어 내어야만 합니다. 머리되신 예수처럼 몸된 교회도 반드시 온전한 메신저로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두' 십자가 중에서-   



LWC 제자훈련 3단계 : 제자의 길 (성경금맥 + 제자도)

LWC DT 3
“목숨 걸겠습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온 고백이 더 이상 거절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세미나에 오셨던 한 목사님께서 이번 제자훈련 과정에 들어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사는 곳은 뉴욕 조지 워싱톤 브리지 건너입니다. 뉴욕에서 개척하여 성도들을 섬기고 계신 젊은 목회자 입니다. 그 곳에서 메릴랜드까지 그레이 하운드를 타고 매주 제자훈련 시간에 맞춰 오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설마’ 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숨까지 걸겠다고 하니 이 목사님의 의지를 넘어 성령의 뜻이 있으심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제자훈련 사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꼬박 4개월 동안 화요일 오후에 뉴저지 집에서 출발하여 수요 제자반에 참여하고 수요일 밤 늦게야 귀가 했습니다. 함께 훈련받았던 모든 이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 세우는 데 목숨 건 것이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자훈련은 어느 한 교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제자훈련은 주님께서 모든 이 땅의 교회에 부여하 신 지상명령이자 사명입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잘못하면 교회의 제자, 목사의 제자를 만들어 내기 쉽습니다. 만약 제자훈련이 그 정도 수준에 머물고 만다면 교회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직 아담의 제자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가는 것만이 교회의 사명이요 목사의 사명입니다. 아담의 제자는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적입니다. 그것은 오직 ‘자기부정’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토록 내 안에 있는 아담성을 죽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생명과 삶 그리고 생활의 모든 영역에 절대 중심으로 중심으로, 절대 주권으로 다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로서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기긍정’을 하고 영광을 주님께 돌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정한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의 예수님의 마음으로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가 교인을 숫자로 세는 시대를 끝내야 합니다. 오직 예수의 진정한 제자를 세우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제 새롭게 준비하고 출발하는 LWC 제자훈련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로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세워 나가는데 진력하고자 합니다. 그 위대한 명령에 생명과 열정과 헌신이 어우러져 주님 앞에 드려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