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0일 목요일

LWC 제자훈련 3단계 : 제자의 길 (2부/ '두' 십자가의 제자도로 무장)

LWC DT 3
이 시대의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명제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메신저가 메시지다’라는 말입니다. 사실 한국교회에 메시지는 넘쳐 납니다. 복음의 선포도 남다릅니다. 인터넷을 몇 번만 클릭해도 수 많은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홍수 때에 마실 물이 없다는 것처럼 한국 교회가 그런 형편에 놓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메시지가 선포되는대도 한국 교회는 세상으로 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까? 수많은 메시지가 선포되지만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이니 당연히 메시지를 받을 수 없지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에게는 더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태도 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겸비함으로 우리가 메신저답지 않게 살아온 것을 너나 할 것 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재를 무릎쓰고 주님 앞에 엎드려 울며 고쳐달라고 강청해야 합니다.

예수의 메시지가 능력이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마음, 예수의 삶, 예수의 죽음 그 자체가 이미 메시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메신저가 메시지가 된 원형이십니다. 만약 예수께 서 성육신 하지 않으셨다면, 평범하고 가난하게 살지 않으셨다면, 고난 당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메시지는 아무 능력이 없을 것입니다. 복음은 복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그렇게 사셨기에 자신이 곧 메시지요, 자신이 곧 복음이 되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예수의 몸입니다. 머리가 그러한 원리대로 사셨다면 몸도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메신저가 되며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의 몸이라고 하면서 머리되 신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머리 둘 곳도 없었는데 교회는 이 땅의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을 복이라 합니다. 주의 종들이 호화로운 차와 집을 갖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예수는 세상것을 초월해서 사셨는데 교회는 세상것을 얻는 것을  복으로 여깁니다. 최고, 최상, 최대가 교회의 철학이 되고 비전이 되었습니다. 머리를 따라야 할 몸이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는 것은 조롱이요, 전도의 문을 큰 몸으로 막아 서고 만 것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에 절실한 것은 버림, 단순, 나눔입니다. 교회는 예수처럼 자기 권리를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버릴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복잡한 사역을 내려놓고 단순해 져야 합니다. 내부적으로 너무 복잡하다 보니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사역마저 그 안에서 함몰되고 있습니다. 얽매인 것들을 벗어 버리고 단순해져야 합니다. 또한 이제는 나누어야 합니다. 있어야 나눈다는 것은 거짓말 입니다. 없는 가운데 나누는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나눔은 마음으로 시작해서 손과 발로 끝나야 합니다. 마음이 없으면 절대 나눌 수 없습니다.

메신저가 메시지가 될 때까지 교회는 뼈 아픈 회개와 실천으로 이 명제를 이루어 내어야만 합니다. 머리되신 예수처럼 몸된 교회도 반드시 온전한 메신저로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두' 십자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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